얼마 전, 문득 찾아온 주말 저녁의 여유. 습관처럼 친구에게 연락했습니다. "시간 돼?" 단 한 번의 거절 없이 늘 흔쾌히 나와주는 중학교 시절부터의 소울메이트. 그날도 별다른 기대 없이 친구를 만났지만, 왠지 모르게 어색한 기류가 흘렀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와준 친구는 유쾌해 보이지 않았고, 함께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찰나, 친구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습니다.
"넌 술 마시는 게 목적이니까, 어디든 네가 정해."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시간이 남을 때, 술 한잔 기울일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갑자기 생긴 자유 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그 친구였던 거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늘 제 일정에 맞춰주고, 제가 연락하면 별다른 이유 없이 나와주던 친구. 당연하게 여겼던 그 모든 순간들이 과연 친구에게도 괜찮았던 걸까요? 혹시 저는 제 편의만을 생각하며 친구를 '술친구'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날의 경험은 제 주변의 관계들을 되돌아보는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혹시 나도, 혹은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당연하게 대했던 적은 없었는지. 특히나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친한'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관계의 그림자들
우리는 익숙함이라는 편안함에 기대어, 때로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간과하곤 합니다. 특히 오랜 친구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 익숙함이 당연함으로 변질될 때:
-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관계는 편안함을 주지만, 자칫 상대를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상대방의 호의를 권리처럼 생각하고, 내 필요에 따라 상대를 찾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 나의 자유시간 = 너의 자유시간?:
-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내가 갑자기 시간이 생겼다고 해서 상대방 역시 그럴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큰 오만일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도 소중한 개인적인 시간과 계획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일방통행 관계의 위험성:
- 건강한 관계는 쌍방향 소통과 균형이 중요합니다. 한쪽만 끊임없이 맞춰주거나 희생하는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지치거나 서운함이 쌓여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 관계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거나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 친구를 찾는 것은,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관계의 목적이 오롯이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데 있다면, 상대방은 소외감이나 이용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를 위하여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친구 관계는 당연함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요. 더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를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봅니다.
-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기:
- 친구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연락하기 전에 '지금 괜찮을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배려가 중요합니다.
- 갑작스러운 연락보다는 미리 약속하기:
- 급한 용건이 아니라면, 미리 시간을 조율하여 약속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서로의 일정을 존중하고 편안한 시간에 만나는 것이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 진심으로 소통하고 공감하기:
-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서로의 needs를 이해하고 맞춰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작은 것에 감사하고 표현하기:
- 늘 곁을 지켜주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진심 어린 감사 인사는 관계를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 나만의 '술친구'는 없는지 돌아보기:
- 혹시 나도 모르게 특정 친구를 나의 외로움이나 심심함을 달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이번 저의 경험이 여러분에게도 자신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관계 속에서, 혹시 놓치고 있던 상대방의 마음은 없었는지. 오늘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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